용주사 벽화, 육조 혜능 이야기
화성 용주사는 조선 22대 왕 정조가 지난 1790년 2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사(왕의 제사를 올리는 절)다. 이곳은 정조가 수원 화성에 내려와 정사를 돌보는 틈틈이 아버지 위패가 모셔진 용주사를 자주 찾은 고찰이다. 이후 정조의 뜻을 계승해 경내에 효행교육관 등이 건립되면서 효심과 불심이 어우러진 효행본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 벽화는 크게 외벽화와 내벽화로 나눌 수 있다. 내벽화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고, 외벽화는 1993년 단청불사를 하면서 새로 그려진 것이다. 여기서는 외벽화를 소개한다.
1> 오조 홍인대사 절에서 부엌 일을 하는 혜능을 찾아온 장면이다.
절에서 방아를 찧으며 공부를 하던 혜능은 수행의 경지가 최고에 달했다. 그래서 홍인대사가 잘 보이는 곳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 붙여 놓았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菩提)라는 나무는 본래 없고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명경도 또한 대가 아닐세
本來一無物(본래일무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요
이 게송을 본 홍인 대사는 혜능의 공부가 이미 도통한 경지에 들어 갔음을 눈치채고, 남의 눈을 피해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육조 혜능을 찾아갔다. 그리고 쌀을 찧고 있는 혜능을 보고 물었다.
“쌀은 다 찧었느냐(공부는 다 되었는가 하는뜻)?”
“쌀은 다 찧었는데 아직 키질을 못했습니다(공부는 다 되었으나 아직 인가(印可)를 못받았습니다).”
돌연 홍인 대사는 지팡이로 방아 머리를 탁탁 탁 세 번 치더니 뒷짐을 지고 묵묵히 돌아가 버렸다. 혜능은 선뜻 그 뜻을 알아들었는데,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친 것은 밤 삼경(三更)을 뜻하는 것이요, 뒷짐을 지고 가신 것은 뒷문으로 오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날 밤 삼경에 조실 방으로 가니 그곳에 병풍이 돌려져 있었다. 그 병풍 뒤에 앉아서 오조 스님으로부터 가사와 발우를 받고 법통을 이어 받았다. 그가 바로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이다.
더 읽기>
지리산 쌍계사 금당벽화 이야기
https://sansaro.tistory.com/m/81
2> 상하 2단으로 구성된 벽화에서 상단에는 심우도 2개 장면을 이어서 그렸다. 가령, 이렇게 심우도의 제2견적과 제3견우의 장면을 이어서 그린 것이다.
3> 상단에 심우도 제4득우, 제5목우의 장면을 그렸다.
하단 :
4>심우도의 마지막, 제10 입전수수 장면인 듯하다.
이하의 심우도 장면과 벽화 이야기는 따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