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대 보적사 벽화 이야기
오산의 독산성 세마대를 찾았다.
임진왜란 때의 권율장군 예지를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독산성은 백제가 축성한 산성으로 성의 길이가 1,100미터이며 권율장군이 서진하는 왜적을 쳐 진로를 차단한 곳으로 성안에 식수가 고갈되는 위기가 닥쳤을 때 권율 장군은 병사들에게 말 등에 쌀을 퍼붓도록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독산성을 에워싸며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들은 성 안에 군마를 씻을 수 있을 만큼 물이 풍부한 것으로 오인하여 스스로 퇴각하였다.
'말을 씻는다'는 세마대(洗馬坮 바로 아래 보적사(寶積寺)라는 절이 있다. 세마대에 권율장군의 전설이 있는 것 처럼, 보적사라는 절 이름에도 전설이 있다.
백제시대 보릿고개에 노부부는 남은 양식이라고는 쌀 두서너 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굶어 죽기로 작정하고 그것 마저도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봉양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곳간에 양식이 가득하였다한다. 부처님께서 은덕으로 노부부에게 보상하여 쌓아 주신 것이다.
보적사는 삼국시대 독산성을 축성하고 전승을 기원하고자 성내에 건립하였다. 여러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 22대왕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때 재건하였다.
독산성 동쪽 아래의 동탄신도시 랜드마크인 메타폴리스와 뭇 중생들을 굽어 살피며 대웅전의 삼존불(약사여래ᆞ석가여래ᆞ아미타여래)이 기도하며, 대웅전 주련으로 말씀하신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ㅡ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출요경』·『법화경』-
보적사는 세마사라고도 하나보다.
주차장에서 독산성 오르는 비탈길 양쪽 입구에 망주석 같은 입석에 '대한불교 조계종 백제고찰 독산성 세마사'라 음각되었다.
독산성과 세마대
불자를 든 스님? ㅡ 삼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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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 스님이 어떤 스님을 보고 불자(拂子)를 들어 세우고 말했다.
“보았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혜능 스님이 등 뒤로 던지고 말했다.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몸 앞에서 보았는가? 몸 뒤에서 보았는가?”
“볼 때엔 앞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에 혜능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이것이 묘공삼매(妙空三昧)이니라.”
어떤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들어 초경 스님에게 물었다.
“혜능 스님이 불자를 들어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초경 스님이 답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표주박 자루를 돌려 들고 이른다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그 스님이 귀를 가리고 ‘화상이시여!’ 하니, 초경 스님이 때렸다.
불자는 수행자가 수행할 때 마음의 티끌이나 번뇌를 털어내는 데 사용하는 상징적인 법구다. 불(拂), 불진(拂塵)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먼지나 모기, 파리 등을 쫓아내는 데 사용했던 생활용구였으나 불교에서는 더럽고 나쁜 것을 털어버리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선종(禪宗)의 장엄구로 쓰였으며 전법의 증표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麻)나 짐승의 털 같은 것을 묶고 거기에 손잡이를 붙여서 만든 형태다. 특히 털의 색깔이 흰 불자〔白拂〕를 귀중하게 여겼다. 불교조각에서는 제석천이나 천수관음보살상의 지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채라고 해 조사 초상화인 영정에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다.
불가에서 지켜야 할 계율인 《마하승기율》에서는 비구가 화려한 불자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 제6에서는 관세음보살은 왼손에, 보현보살은 오른손에 백불을 잡은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관세음보살 40수(手) 중의 하나로 이 불자를 지물로 하는 뜻은 신상의 악한 장애나 환란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