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뜰안

주련(柱聯)

황보근영 2023. 5. 26. 15:45

기둥(柱)마다에 싯구나 경구를 연(聯)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좋은 글귀나 남에게 자랑할 내용을 붓글씨로 써서 붙이거나 그 내용을 얇은 판자에 새겨 걸기도 한다. 판자 아래위로 하엽(荷葉)을 양각(陽刻)하든지 연꽃을 새기든지 당초무늬를 새기든지 하여 윤곽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에 글귀를 적어 새김질한다. 글씨의 윤곽만 새기는 기법을 쓰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다. 더러 튀어나오도록 양각하는 수도 있으나 드문 일이다. 양각한 부분과 새김질한 글씨에 색을 넣어 장식한다. 판자 전체에는 보통 밀타승(蜜陀僧)을 발라 하얗게 만들고, 글씨에는 먹을 넣든지 군청(群靑)을 가칠하고, 양각한 무늬들은 삼채(三彩) 정도로 단청하여 화려하게 꾸미기도 한다.
주련은 불가의 법당과 전각의 기둥에도 걸고, 유가의 선비집 안채 사랑채 대문 기둥에도 걸고, 임금님과 신하가 있는 궁궐의 전각 등에 건다. 주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소원하거나 덕담(德談)의 글귀, 인격함양을 위한 좌우명, 수신 제가에 좋은 오언 또는 칠언의 싯구, 포교를 위한 부처님의 말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화두경구를 새겨 게시한다. 
 
산하의 경치를 감상하고 부처님을 뵙는 것이 산사를 찾는 목적이라 하겠지만,  주련에 새겨진 '한마디 말씀' 을 얻는 것은 평생을 좌우하는 등대를 얻는 환희와 같다. 첫 눈에 반하여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내 사랑같이.     
한마디 말씀에 크게 깨우친 주련이 있다. 바로 해인사 법보전 주련이다.
 
<해인사 법보전 주련>
해인사에서는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곳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이 있고, 그 뒤에 법보전(法寶殿)이 있다.
법보전 입구 좌우 기둥에는 머리가 쨍하게 열어 주는 주련이 있다.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도량이 어디있을까? 
삶과 죽음이 있는, 지금 바로 여기에!"
 ~https://sansaro.tistory.com/38

圓覺卽是 - 삶과 죽음이 있는 지금 바로 여기

(글쓴 때, 2008.08.01)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 법보사찰 해인사는 소위 우리나라의 3보 사찰이다. 그래서인지 해인사에서는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곳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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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법보전 주련

 

<수덕사 범종각 주련>

수덕사 범종각 전면, 2013년 1월 촬영

三界猶如汲井輪
(삼계유여급정륜)
삼계는 마치 우물 긷는 두레박과 같고

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겁역미진)
백천만겁을 미세한 먼지와 같이 지내 왔는데,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이 몸을  이번 생에 제도하지 않는다면

更待何生度此身
(갱대하생도차신)
어느 생에  다시금 이 몸을 제도하리요.

수덕사 범종각 후면,&nbsp;2013년 1월 촬영

願此鐘聲遍法界
(
원차종성변법계)
원컨데 이 종소리가 온 세상에 두루 퍼져서
鐵圍幽暗悉皆明
(
철위유암실개명).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다 밝아지며 
三途離苦破刀山
(
삼도이고파도산)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지옥을 무너트리고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모든 중생들은 바른 깨달음을 이룰어지이다. 

 

<용주사 범종각의 주련>

화성 용주사 범종각 주련

聞鐘聲 煩惱斷(문종성번뇌단)
智慧長 菩提生(지혜장보리생)

"이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는 끊어지고,
지혜는 자라나고 깨달음을 얻도다."
 
이에 댓구는,
離地獄 出三界(이지옥 출삼계)
願成佛 度衆生(원성불 도중생)
"지옥세계 떠나며, 삼계를 벗어나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소서."

<통도사 일주문 주련>
불보사찰 통도사의 경우에는 큰 현판을 횡으로 크게 걸고 '靈鷲山通度寺(영축산통도사)'를 적고 있으며 그 아래의 좌우기둥에다 '佛之宗家, 國之大刹(불지종가 국지대찰)'이라는 주련을 좌우에 붙여 불보사찰임을 나타내고 있다.

통도사 일주문 주련

 

[더하기]
어디서 들은 이야기였나?
어느 사찰 주련에서 본 글인가?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늘 되내인다.

"得之本有, 失之本無"
(득지본유, 실지본무)

~ 얻은 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은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다."

<벽암록>에 나오는 말이다. 얻었다고 좋아하고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거기에 너무 빠지고 집착하지말자. 얻은 것은 본래 내 것이었고, 잃어버린 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여기자.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