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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전에

대웅전(大雄殿)

by 황보근영 2023. 4. 23.

부처님 전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주문을 지나왔으며, 온갖 산소리 물소리를 건너며 수미산을 오르는 이 구도자는 갖가지 유혹을 떨치며 천왕문을 지나 이제 더 이상 중생과 부처가 나뉘지 않는 불이문을 들어오니 부처님 계신 불국정토에 하나가 되었다.  이제 부처와 내가 하나되어 만나는 법의 전당에 들어선 것이다. 이곳이 바로 영원한 자유와 해탈의 진리(Dharma)로 가득찬 진리의 전당, 곧 법당(法堂)이다. 부처님은 한 분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 세상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 이 수많은 부처님을 모신 곳을 법당이라 한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 석가모니의 생애를 담은 팔상전과 영산전을 차례로 찾아가며 부처님을 만나리라. 이제 나와 부처가 하나 되리라.

선종(禪宗)계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신 본당을 대웅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절에 가서나 '대웅전', '대웅보전'이라는 현판만 보아도 그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한 분 만 모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좌우에 협시(脇侍:좌우에서 모시고 시중드는)보살을 두고있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신 불국토의 주인이신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 보살(普賢菩薩)을 협시하고 있다. 때로는 부처님의 제자 가섭과 아난을, 연등보살과 미륵보살로 좌우 협시 봉안한 절도 많다. 협시보살은 부처님보다 격이 한층 낮은 분이기는 하지만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다. 대웅전의 불,보살 배치의 기본 형식은 다음과 같다.

송광사 대웅보전

 어떤 큰 절에는 대웅전의 격을 한층 더 높여 본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가리키는 삼존불과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을 가리키는 삼세불과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을 가리키는 삼신불을 함께 모시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경우를 대웅보전이라 한다.
송광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닫집을 세우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를 양각한 불단 위에 과거의 연등불,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미륵불의 삼세불과 왼쪽에서부터 지장, 관음, 문수, 보현보살을 협시하여 더욱 장엄하게 꾸민 경우도 적지않다.

송광사 대웅보전, 삼세불과 사보살상

 

 [일반적 대웅전의 불보살 배치도]
 보현보살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대웅전의 불상과 좌우협시 보살상

 
[대웅 보전의 불상 배치도 : 삼존불(三尊佛)]
아미타불     석가 모니불      약사 여래불
 
  [대웅 보전의 불상 배치도 : 삼세불(三世佛)]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

[대웅 보전에서의 불상 배치도 : 삼신불(三身佛)]
비로 자나불     석가 모니불       노사나불
(법신불:法身佛)  (화신불:化身佛)  (보신불:報身佛)

 

  • 석가모니불 : 역사적 실존 인물로 성불한 부처님으로 불교의 사실상 교주.
  • 아미타불 : 서쪽 아득히 먼곳에 있는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부처님.
  • 약사 여래불 : 중생의 몸과 마음의 질병을 치료,수명을 연장, 재앙을 소멸, 의복과 음식을 풍부히 주시는 부처님, 연꽃위에 앉아서 왼손에 약병을 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 정광불(定光佛) :  연등불이라고도 하며 아득한 과거 세상에서 석존에게 성불할 것을 예언하신 부처님.
  • 미륵불(彌勒佛) : 석가 모니 부처님보다 56억 7천만년 후에 이 세상에 오실 미래 부처님이시며 그때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 하도록 되어있다.
  • 법신불 : 비로 자나불(毘盧遮那佛)은 온 세상의 모든 부처님을 전체적으로 총괄한 법신의 부처님으로 영원 불변의 진리를 몸으로 한 부처님
  • 화신불 : 석가 모니불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부처의 몸
  • 보신불 : 노사나불(盧舍那佛)은 모든 부처님을 총괄한 보신의 부처님으로 오랜 수행의 과정을 거쳐 얻은 무궁무진한 공덕을 몸으로 한 부처님

삼존불과 보살상

 이상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의 여러 경우를 알아보았는데, 그런 것은 일반적인 것이고 꼭 틀에 박힌 공식은 없고 사찰에 따라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다.
 부처님께서 봉안된 곳을 불단을 수미단 (須彌壇: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을 보물로 지정)이라고 하고, 부처님 머리 위에 있는 목조보개 (木造寶蓋:나무로 만든 지붕)를 '닫집'이라고 한다. 또 부처님 뒤에 있는 탱화는 주로 영산 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란, 옛날 부처님께서 인도에 있는 영축산(靈鷲山)에서 많은 제자를 모아 놓고 설법을 하신 광경을 그린 그림으로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그 주변에 여러 제자가 설법을 듣는 모습이다. 부처님 주위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하여 불단 주변에 여러 가지 꽃무늬와 천의(天衣)를 날리는 비천(飛天)과 여의주를 입에 문 용. 극락조와 연꽃무늬 꽃살무늬 출입문 등 잘 관찰하면 아름다운 불교 미술에 감탄하고 잘 꾸민 옛사람들의 정성에 놀랄 뿐이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문살무늬과 보광사의 벽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 대웅보전 꽃문살무늬
보광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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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 국보와 대웅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서)

예산 수덕사 대웅전 (禮山 修德寺 大雄殿)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安東 鳳停寺 大雄殿)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쪽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뛰어난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은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은 각각 건축 구조와 건축사 연구, 계단(戒壇)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