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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전에

미륵전(彌勒殿)ㆍ용화전(龍華殿)

by 황보근영 2023. 5. 1.

미래 세계의 부처님이신 미륵불을 모신 전각을 미륵전(彌勒殿)이라 한다. 미륵불은 우리들의 미래 세계를 관장하고 우리들의 찬란한 미래를 약속해주는 미래불(未來佛)이다.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뜻으로, 미륵불을 안치한 전각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 하고 때로는 장륙존자(丈六 尊者)를 모신 전각이라고 '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한다. 내세에서 성불하여 미륵불이 되므로 미륵 보살이라는 말이 맞으나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이라고 하며 미륵은 보살의 상과 부처의 상을 모두 갖추고 있다.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 하며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고도 부른다. [미륵하생경]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인도의 귀공자로써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다가 모든 행과 도를 원만히 닦아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장차 부처님이 된다는 보장을 받음)를 받았다. 그 후 도솔천의 하늘나라에서 설법을 하고 있으며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지 56억 7천만년 뒤, 인간들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 8만세가 되는 때에 이 사바세계에 다시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성불하고 거기서 3회 설법으로 제도받지 못한 272억명을 교화시킨다.
  보통 석조불이 많은데 은진미륵(관세음보살), 안동 제비원미륵불(아미타불), 법주사 미륵불, 충북 제원군 월악산 미륵불 등은 유명하며 미륵반가사유상(국보 83호)도 미륵 보살의 모습이다.
 미륵 부처님의 현생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기도처는 전남 화순 운주사. 고창 선운사, 충남 논산 관촉사, 부여 대조사, 충북 보은 법주사 등으로 주로 충청도·전라도에 많이 있다. 미륵전 후불 탱화는 '용화 회상도(龍華會上圖)'이며 전북 김제의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은 미륵불과 강증산은 너무나 유명하며, 충남 홍성의 용화사에 자연석 미륵불과 삼막골 미륵불의 영험, 속리산 법주사 청동 미륵불과 지하에 꾸며진 '용화 세계'는 한국 불교 미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는경내의 석조물 가운데 유일한 국가 지정 문화재(보물 471호) 석조봉발탑(石造奉鉢塔)이 있다. 높이 약 2. 5미터의 언뜻 보기에 석등과 같은 형식과 같은 이 석조물은 말그대로 돌로 만든 밥그릇으로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가 발우와 함께 가사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범어사 미륵전

 

통도사 용화전과 봉발탑
통도사 봉발탑(보물 471호)

 

통도사 용화전 미륵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 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