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이야기16 상원사ㆍ월정사 스님이야기 벽화 6.25 전쟁 중의 한암스님한암 대종사(1876~1951) 1950년 6·25전쟁은 민족의 비극이었다. 그 전쟁으로 민족의 분단은 더욱 더 고착화되었고, 남북 간의 이념 대결이 극심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문화재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실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북진을 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하였다. 마침내 국군은 38선상에서도 중공군의 총공세에 밀려 다시 남쪽으로 후퇴를 하였고, 주민들도 다시 피란을 가야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1·4후퇴이다. “이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나야 죽으면 어차피 다비茶毘에 붙여질 몸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오세요!” “너희들.. 2023. 6. 26. 오어사(吾魚寺) 전설을 그린 벽화 포항시 오천에 가면 오어사가 있다. 오어사! 절 이름이 재미있다. 나 '오(吾)', 고기 '어(魚)', 절 '사(寺)', 곧 '내 물고기'라는 오어사는 일찍이 신라 4대 聖人이라 불리는 자장율사, 원효대사, 혜공대사, 의상대사가 함께 머물러 수도했던 곳으로 특히 원효대사와 혜공대사의 재미있는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오어사는 신라26대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는데 오어사로 개명된 데 대해서는 원효와 혜공의 일화가 전해진다. 제4권 [의해편]에 나타난 오어사는 고승 혜공의 흥미진진한 행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 가기 위하여 운제산 계곡에서 원효암이라는 초가를 짓고, 불철주야 열심히 정진하던 차에 혜공선사는 중국에서 부처님의 전업을 이어받은 .. 2023. 6. 25. 원효스님의 탄생지, 제석사 벽화 15년만(2016년)에 제석사를 다시 찾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도찬산 기슭에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원효스님의 성속일여의 뜻이 읽힐 수 있는 민가마을 가운데 있다.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고 의미를 부여하는게 중요하다. 2001년 처음 찾아왔을 때는 칠성각 안에 원효의 영정 복사본을 모셔두었는데 지금은 원효성사전을 따로 건축하여 원효스님상을 봉안하고 그 뒤로 '원효성사 팔상도' 후불 탱화를 두었다. 제석사, 원효성사전 3칸의 네 기둥에는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지은 오도송 4행이 주련으로 걸려있다. 심생고종종법생(心生故 種種法生) - 마음이 생긴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심멸고감분불이(心滅故 龕墳不二) - 마음이 멸하면 감실과 무.. 2023. 6. 25. 세마대 보적사 벽화 이야기 오산의 독산성 세마대를 찾았다. 임진왜란 때의 권율장군 예지를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독산성은 백제가 축성한 산성으로 성의 길이가 1,100미터이며 권율장군이 서진하는 왜적을 쳐 진로를 차단한 곳으로 성안에 식수가 고갈되는 위기가 닥쳤을 때 권율 장군은 병사들에게 말 등에 쌀을 퍼붓도록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독산성을 에워싸며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들은 성 안에 군마를 씻을 수 있을 만큼 물이 풍부한 것으로 오인하여 스스로 퇴각하였다. '말을 씻는다'는 세마대(洗馬坮 바로 아래 보적사(寶積寺)라는 절이 있다. 세마대에 권율장군의 전설이 있는 것 처럼, 보적사라는 절 이름에도 전설이 있다. 백제시대 보릿고개에 노부부는 남은 양식이라고는 쌀 두서너 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굶어 죽기로 작정하고 그것 .. 2023. 6. 24. 목어 벽화 이야기 용주사 벽화 이야기 4불전사물의 하나인 목어(木魚)가 생긴 유래가 되는 이야기 옛날 중국 동정호 가까이에 공부가 하늘에까지 닿은 도승(道僧)한 분이 있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까지도 스님의 높은 가르침을 받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스님 밑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제자가 공부를 하려는 뜻을 세워 스님의 제자가 되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게으름이 나서 하라는 공부는하지 않고 장난만 일삼았다. 스님은 여러 번 좋게 타일렸으나 게으른 제자는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방종한 길로만 흘러갔다. 할 수 없이 스님은 그 제자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하고, 신통력을부려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동정호 속에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반성을 하면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 주겠으니 참.. 2023. 6. 23. 부설거사의 이야기 벽화 용주사 벽화 이야기부설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속세 이름은 진광세이다. 그는 어려서 불국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도반 영조와 영희와 더불어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해 오대산을 찾아가던 길에, 전북 김제군 만경들의 구릉의 구무원의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그 집 딸인 18세의 묘화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으나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트였다. 그때부터 묘화는 부설을 사모하여 함께 살자고 애원하였다. 출가승으로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하였다. 부설은 '중생 제도도 인연따라 다르다'고 생각이 들어 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그렇게 파계하여 15년을 살면서 부설은 아들ᆞ딸을 낳았다. 속세의 삶을 살면서도 부설은 별당을 짓고 불도수련에 전념하였다. 수년이 지나, 젊은 시절 출가.. 2023. 6. 23. 설산동자, 위법구망도 용주사 대웅보전 외벽화 이야기설산동자, 위법구망도(爲法忘驅圖) 이야기 위 그림은 불교의 경전 중에 에 나오는 부처님의 설법 이야기이다. 전생의 석가모니가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하면서, 한 때 설산동자로 출가하여 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던 중, 깊은 명상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를 본 하늘의 제왕인 제석천이 설산동자의 수행력과 진리를 향한 동자의 마음을 시험하고자하였다. 제석천은 자신의 몸을 험상궂은 야차로 변신하여 동자의 앞에 나타나 진리의 게송을 한구절 읊는 것이었다. 제석천이 천사의 모습이 아닌 야차(마귀)의 모습으로,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 이 그림이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諸行無常 是生滅法)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며 그것이 생멸의 이치이다. 세상의 생겨난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그.. 2023. 6. 23. 용주사 벽화, 육조 혜능 이야기 화성 용주사는 조선 22대 왕 정조가 지난 1790년 2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사(왕의 제사를 올리는 절)다. 이곳은 정조가 수원 화성에 내려와 정사를 돌보는 틈틈이 아버지 위패가 모셔진 용주사를 자주 찾은 고찰이다. 이후 정조의 뜻을 계승해 경내에 효행교육관 등이 건립되면서 효심과 불심이 어우러진 효행본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 벽화는 크게 외벽화와 내벽화로 나눌 수 있다. 내벽화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고, 외벽화는 1993년 단청불사를 하면서 새로 그려진 것이다. 여기서는 외벽화를 소개한다. 1> 오조 홍인대사 절에서 부엌 일을 하는 혜능을 찾아온 장면이다. 절에서 방아를 찧으며 공부를 하던 혜능은 수행의 경지가 최고에 달했다. 그래서 홍인대사가 잘 보이는 곳에 .. 2023. 6. 22. 쌍계사 금당벽화와 육조혜능 이야기 중국 선종, 돈오사상의 육조 혜능을 하동쌍계사에서 만났다. 가람의 맨 위에 쌍계사 창건설화가 담긴 혜능의 머리를 모셨다는 금당이 있었다. 들어가는 문의 이름이 돈오문(頓悟門)이다. 돈오는 바로 육조 혜능의 수행법 핵심 사상이다. [육조정상탑ᆞ금당ᆞ세계일화조종육엽] 전하는 말로 '추사가 현판을 썼다'지만, '추사체로 쓴 현판'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금당의 벽화에는 혜능의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참 좋은 발견이다. 여느 절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벽화이다. 나는 사찰의 전각을 찾을 때면 전각의 주인공을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벽화 이야기를 찾아 보고자 탑돌이 하듯이 전각의 뒤로 돌아간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외아들 혜능은 장작 땔나무를 팔면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날 장작 주문을.. 2023. 6. 2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