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세계에서 '시인의 마을'로 통하는 절이 있다. 내소사(來蘇寺)이다.
내소사를 찾아 들어가는 전나무 숲 길이 눈에 선하다. 그때가 2000년이던가 2001년이던가?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 왼쪽으로 벗어나 부도 탑비전있다. 여기에서 본 비문은 아직도 나의 화두(話頭)다. 앞쪽에는 ‘海眼凡夫之碑(해안범부지비)’라 적혀있고, 뒷쪽에는 이렇게 음각되어있다.
生死於是 是無生死
(생사어시 시무생사)
"삶과 죽음이 이곳에서 나왔으나,
이곳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해안(海眼,1901~1974)스님은 평생 화두참구로 일관한 선승(禪僧)이며, 제자들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참선공부와 포교가 한국불교의 방향임을 강조하며 정진하셨다. 해안스님은 돌아가시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비에 새길 글을 직접 정해주셨다. 이 글이 바로 해안범부비문이다. 범부 란 말은 자신을 겸손하여 칭하는 말이다.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며 큰스님으로 존경받던 탄허(呑虛)스님의 친필이다.
속진(俗塵)에 물든 중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여기서 나왔으나, 여기에 없다?
그것이 삶이든 죽음이든,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가고 변하는 것이니, 이 또한 당연한 것 아닌가? 모든 게 다 그렇지. 그런데 진짜로 여기에 생사가 없다고? 여기에 나날이 탄생이 있고, 나날이 죽음이 있는데, 이 무슨 소린고?"
나는 아직 화두참선이 간절하지 못했나보다. 희미하고 헤맬 뿐이다.
아니, 그것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갈 뿐이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가 생과 사가 상존하니, 굳이 삶에도 죽음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려러니, 그냥 살아라"는 뜻으로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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