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사로 가며

석가모니의 사상

by 황보근영 2023. 4. 18.

수자타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고타마 싯다르타가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녘 샛별이 반짝거릴 적에 드디어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무상보리- '더 이상은 위없는 올바른 깨우침-의 정각(正覺, abhisambodhi)을 얻게 되어 부처님이 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다.  이를 '초전법륜'이라 하며, 그 전하신 내용은 바로 바로 연기설과 사성제설 등이다. 이로써 불교는 시작되었다.

여기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핵심 사상과 불교의 근본 정신 및 특징을 살펴본다.

 

 [ 공(空)]

[심우도의 공사상]

 

생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不生亦不滅)
영원한 것도 없고 단절된 것도 없다. (不常亦不斷)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不一亦不異)
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다. (不來亦不出)  - [中論] 卷1

 

결국 연기성이라는 것은 존재에 있어서 서로간의 관계성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상의성(相依性)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곧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의 마음속에 이미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내지 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마저도 하나의 연기성이기 때문에 '이것이다'하는 실체로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공(空)이기 때문이다. 제법(諸法)은 연기의 성품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기의 공성(空性)은 연기설의 근본정신인 중도(中道)와 이를 깨우치는 중관(中觀)에 있다. 바로 이러한 연기와 공의 관계를 용수는 팔부중도(八不中道)로 나타내고 있다.

공(空)은 자칫 '공허한 것',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상태'를 말하는 듯하여 불교의 근본 정신을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의 공(空)은 모든 존재에 실체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공(空)’의 사상은 원시불교에도 있었지만, 특히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된 이후 대승불교의 근간이 되었고, ‘색즉시공(色卽是空)’등의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갖가지 조건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것이지 영원불변한 실체성은 없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오온(五蘊)’의 어느 하나에도 실체적인 자아(自我)는 없다고 하는 '인공(人空)'과, 외적인 모든 존재 영역에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하는 '법공(法空)'으로 대별하여 가르친다. 또한 ‘공’은 ‘유(有)’와 대립하는 ‘무(無)’와는 다르다. 존재라는 것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동적(動的)인 모습 또는 단순한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유와 무를 초월한 ‘중도(中道)’의 실천에 의해 직접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緣起)]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此滅故彼滅) -[雜阿含] 卷13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연기설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사성제(四聖諦)]

사성제와 팔정도는 석가모니가 인도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행한 설법이다.

사성제란 곧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 핵심의 진리로서 여러 불교교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내용으로 '모든 것은 다 고통'이라는 고(苦)성제,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집(集)성제, 그리고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의  해탈'을 그린 멸(滅)성제, 그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가지의 올바른 수행생활'을 설명하고 있는 도(道)성제이다.

도성제는 팔정도로 설명된다. 즉,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실천 수행의 길은 '여덟갈래의 길'이란 것이다. 어느 길로 가던 그 길을 똑바로 가면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8가지 성스러운 길’이라는 뜻으로 팔성도라고도 한다. 그림은 송광사 대웅보전 내의 벽화에서 가져왔다.

 

사성제 1 - 고성제
사성제 2 - 집성제
사성제 3 - 멸성제
사성제 4 - 도성제

[팔정도(八正道)]

그 첫째가 불법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바르게 인식하는 정견(正見)이며, 둘째는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말하는 정사(正思) 그리고 정어(正語, 진실된 말), 정업(正業, 부정한 행위를 삼가는 것),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의식주를 바르게 하는 것), 정정진(正精進, 바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는 것), 정념(正念, 실체와 사고· 감정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이며, 마지막이 바른 선정으로 심신을 조용히 갖고 무상무아(無常無我)를 깨닫는 정정(正定)이다.

[통도사 팔정도탑] - 정견 정사 정어

 [ 삼법인(三法印)]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여 변하지 않는 것 없어라.
'나'라는 절대적인 실재 없고, 영원한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것.
'내 것이라' 집착하고, '영원하리라'는 망상에 우리 삶은 고통일세.

삼법인은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일체 존재의 세 가지 특성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을 말하고 있다. 곧,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따라서 '절대 영원한 자아의 본체란 있을 수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 집착하면 '모든 것이 다 고통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를 말한다. 영원한 것도 없고 내 것 또한 없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으면 바로 '고요하고 절대 자유의 세계인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때론 일체개고의 진리 대신에 열반적정을 더하여 삼법인설이라고도 하며, 모두 말하여 사법인설이라고도 한다.

 

[ 불교 정신의 특징]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8만 4000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부처님도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가리켰으나 그의 입적(入寂) 후 불신(佛身)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신(身)·3신 등에 대한 논의와 과거불 ·미래불, 또는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불, 보살(菩薩) 등의 설이 나와 다신교적으로 되었다.  

불교를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기독교와 비교하기도 한다.
서양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는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적 세계관이라면, 불교는 육도윤회로 대표되며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론적 세계관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항시 열어두고 있다. 또한 기독교는 오직 예수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한 '타력(他力)종교'라면, 불교는 자기 자신의 깨우침에서 구원이라는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자력(自力)종교'이다.

'산사로 가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찰의 건축 양식  (1) 2023.04.18
사찰의 기본 구조  (1) 2023.04.18
산과 절  (0) 2023.04.18
팔상도로 읽는 석가모니의 생애  (1) 2023.04.18
산사로 가는 길 - 산사 조감  (0) 20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