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산으로 가득하며 어디를 가나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는 산을 보며 태어났고, 산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먼 훗날 모두를 버리고 돌아갈 곳도 역시 산이다. 그러므로 산은 우리의 시작이고 또한 우리의 끝간데이며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힘겨운 일을 당했을 때에 산을 찾아가 그 웅대한 가슴에 안기면 다시 생기를 찾고 새로운 정기를 받아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도 산이 바로 우리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산 속에서도 가장 경치 좋고 물 좋고 터 좋은 곳에는 꼭 '절' 이 있고 '암자' 가 있다. 그래서 산을 찾는 사람은 꼭 절을 찾게 되고 절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산을 찾게 된다. 산을 절과 연관시켜서 살펴보고, 또한 절을 산과 관계지어서 보면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이 곧 절이고 절이 곧 산이어서. 산과 절이 다른 것이 아니고, 또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산과 바다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닌 것과 같이 산과 절이 또한 둘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산이 절이고. 절이 산인 것이다. 산은 절의 뜰이고, 절은 산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산에 올라가면 누구라도 성스러운 구도자(求道者)가 되고, 산은 그 자체가 커다란 사원이다. 이와 같은 이치(理致)를 불교에서는 일실평등(一實平等)의 원리라고 한다.
산사에서 굽이굽이 내려다보이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오묘한 부처님의 경계에 큰 감명을 받을 것이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항상 정겹기만 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평안케하는 건강한 소리이다.
눈 덮힌 겨울 산이나, 이름도 모르는 많은 꽃들이 다투어 핀 봄 동산, 그리고 구름에 덮혀 모습을 감춘 여름 산, 단풍 속의 절 기왓장. 그 속에 있는 절과 암자를 찾는 사람은 안락과 낭비와 사치의 타락 문명이 판치는 도시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순수함을 얻을 수 있다.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친구 같은 가까운 산이며 멀찌미서 뒷짐지고 다정히 바라다보는 어머니 같은 먼 산을 의식하면 산사의 경내는 더욱 다정스러워질 뿐이다.
산 그늘이 조용히 내려앉으면 법당의 기와들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하고 내 마음은 더욱 평화를 찾게 된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겹겹이 쌓인 낙엽 뜨는 냄새가 코에 물씬거린다. 그럴 때는 이 산 어딘가에 움막을 짓고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한평생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절을 찾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단순히 경내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이 오묘한 산천에도 마음을 돌려 내 심성을 자연의 순수함에 순화시켜 더 넓고 큰 수확을 얻어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산사를 찾는 바른 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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