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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징표

불자(拂子)와 주장자(雷杖子)

by 황보근영 2023. 4. 23.

불자는 불교에서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번뇌를 떨어내는 데 사용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이다.
불진(拂塵)에서 유래했으니, 처음에는 '먼지털이' 용도였지만 마음의 거울에 일체의 먼지를 떨치는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오조 홍인의 제자 신수(神秀 : 606~706)의 게송이 연상된다.

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 시시근불식
勿使惹塵埃 물사야진애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
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붙지 않도록 하라.”

‘불주(拂麈)’라고도 하며, 원어는 'vyajana'이다. 삼이나 짐승의 털을 묶어서 자루 끝에 매어 달은 것으로 벌레를 쫓는 데 쓰는 생활용구로써, 인도의 자이나교에서는 수행자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물건이고,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주장자와 함께 설법 시에 바른 위의와 법을 상징하는 수행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자장율사 진영 - 손에 불자를 들고 있다.
 

불가에서는 흰 말의 꼬리털로 만든 백불(白拂)을 귀하게 여기며 조사(祖師) 영정에 지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자루에는 장식으로 흔히 용의 문양을 새기기도 한다. 불자를 지물로 삼는 뜻은 신상의 악한 장애나 환란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선종의 장엄구로 선승의 문답 시에 즐겨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전법(傳法)의 증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묘관음사 불자는 짐승의 흰 털을 유제(鍮製)의 줄로 촘촘히 엮은 것으로 털이 빠지지 않게 세벌로 엮어 수공이 뛰어나다. 나무의 막대는 장식이 없으나 손잡이 부분에 도포 띠와 같은 수술을 매어 장식하였다. 혜명(慧明, 法號-慧月)선사의 유품으로 숫 사자의 갈기털이라고 하나 확인할 수는 없다.

이 불자는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나 공예적 수법이 우수하며 소장 연기가 명확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또한 수장자의 전법 관계를 알 수 있고 현재 남아 있는 예가 드문 문화재이다.

묘관음사 불자

[주장자(雷杖子)]

자신이 만든 주장자를 살펴보고 있는 인오 스님. 벽에 줄지어 늘어선, 길이가 각기 다른 주장자들이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지혜의 지팡이로 불리는 주장자는 스님들이 갖춰야 할 18가지 법구 중 하나다. 주장자는 스님들이 길을 걸을 때 안내하는 나침반이며 경책의 도구였고, 법을 일러주는 상징물이었다. 선사들이 법문할 때 주장자를 들어 올리면 부처님의 염화미소처럼 이심전심으로 법을 전수해 수많은 언어를 대신하는 마음법이 됐다.

-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당나라 선승 임제 선사에 얽힌 얘기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그는 스승 황벽 선사를 만나 밤을 낮으로 여기고 정진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대는 왜 황벽 선사를 만나 불법의 참뜻을 묻지 않는 건가”라고 했다. 이에 임제 스님이 황벽 선사를 찾아 그 뜻을 물었지만 스승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주장자(柱杖子)로 제자를 내리쳤다. 임제 선사는 세 차례 스승을 찾아가 주장자로 두드려 맞은 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이처럼 주장자에 얽힌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적지 않다. 주장자는 출가자가 몸에 지녀야 할 지팡이이면서 불법(佛法)의 상징이었다. 

 [벽암록과 주장자 본칙]

- 벽암록 제31칙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고[麻谷振錫]

[본칙] 마곡스님이 석장(錫杖)을 지니고 장경(章敬)스님에게 이르러, 선상(禪床) 주위를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조계의 모습을 쏙 빼닮았네. 끝내는 하늘도 놀라고 땅도 감동했다.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지, 옳지!"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한 배 탄 사 람들을 모두 속였다. 이 무슨 말이냐? 사람을 잡아 매는 말뚝이다. 설두스님이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그래도 한 수 헤아렸군. 마곡스님이 또다시 남전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여전히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다. 전에 했던 짓을 거듭 하는군. 새 우가 뛰어봐야 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왜 인정하지 않는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구나. 이 무슨 이야기인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당시 마곡스님이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는데, 스님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주인공이 어디에 있느냐? 이놈이 원래 남의 말을 가로채는 녀석이었군. 들통났구나.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았지만 틀린 것은 바로 자네야!"

-사람을 죽이려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만 하고, 사람을 위하려면 반드시 사무쳐야 한다. 많은 사람을 속였구나. 이는 바람의 힘[風力 : 번뇌]에서 굴러나온 바이니 결국 사 라지고 만다.

-과연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었군. 자기는 어떡하려구?

 

- 벽암록 제60칙 운문의 주장자[雲門 杖]

[수시] 부처와 중생은 본디 차이가 없는데 산하와 자기가 어찌 차등이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 일까? 만일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며 요새가 되는 길목을 꽉 틀어 막는다면 조금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수하지 않는다 면 온 세상 어디에서라도 조금도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는 것일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운문스님이 주장자를 가지고 대중에게 설하였다.

-때에 적절하게 교화하는군. 사람 죽이는 칼이기도 하고 사람 살리는 칼 이기도 하다. 그대의 눈동자를 바꾸어버렸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뭣하러 번거롭게 그러냐! 변하여 무엇할까? 천지를 삼켜버렸으니

-천하의 납승들이 목숨을 보존치 못한다. 목구멍을 막았느냐? (운문)스님 은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려는가?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느냐?"

-시방에는 창도 없고 사면에도 문이 없다. 동서남북 사유(四維 : 사방) 상하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미친 소리다. 이를 어찌하랴?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의 주장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경구로 유명한 임제 선사(禪師)가 나타났는데, 임제의 스승은 황벽이며, 황벽의 스승은 백장이다. 일찍이 황벽이 스승 백장에게서 공부를 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을 때 질문하는 스승의 뺨을 한 대 후려 갈겼는데 얻어맞은 스승은 껄껄 웃으며 좋아했고, 황벽의 제자 임제도 깨달음을 얻었을 때 스승의 뺨을 올려붙이고 큰소리를 질러 압도해 버렸다. 역시 스승 황벽도 얻어맞고 좋아라했는데 이는 눈 푸른 제자의 공부가 자신을 넘어서서 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기뻐한 것이다. 이를 두고 후세인들은 '제자가 스승의 뺨을 때려 가르침에 보답했다'라고 표현한다. 임제는 깨달음 이후 제자를 가르칠 때마다 큰소리로 '喝'을 질러댔는데 여기에서 '덕산은 몽둥이로 때리고, 임제는 큰소리를 질러 댄다'는 뜻의 유명한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란 말이 나왔다.덕산 화상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걸핏하면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방'을 사용했다. 이 방(棒)이 주장자일 것이다.

서예가 솔뫼 정현식 ‘불서한담’ 가운데 ‘덕산방임제할’. 불교신문 자료사진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덕산방의 주인공, 덕산과 금강경>

덕산은 평소 <금강경>에 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금강경> 박사답게 그는 <금강경소(金剛經疏)>를 걸망에 넣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는 도중 그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난다. 마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서 떡을 사려 하자 노파는 걸망 속에 있는 것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금강경소>라고 대답하자 노파가 내기를 걸어왔다. 만약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면 떡을 팔고 대답을 못하면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마다할 덕산이 아니었다. 자신 있는 표정의 덕산을 향해 노파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금강경>에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고 나오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


순간 덕산은 말문이 막혔다. 이런 문제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크게 한 방 얻어맞고 의문의 1패를 당한 덕산은 결국 점심을 굶은 채 용담(龍潭)으로 향했다. 당시 그곳에는 숭신(崇信)이라는 유명한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는데, 용담에 산다 해서 용담숭신이라 불렸다. 덕산에게 숭신은 교학(敎學)이라는 무기로 소탕해야 할 첫 번째 표적이었다. 선사를 만난 덕산이 ‘용담이라고 와보니 용도 없고 연못도 보이지 않는다’며 짧은 펀치를 날렸다. 그러자 숭신은 웃으면서 ‘용담에 잘 도착했네’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또 다시 말문이 막힌 덕산은 의문의 2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용담에 머물게 된 덕산은 숭신으로부터 결정적인 한방을 맞고 선승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느 날 밤 선사와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밖이 어둡다고 말을 하자 숭신은 호롱불을 하나 건네주었다. 덕산이 호롱불을 받으려고 하자 선사가 갑자기 불을 훅 하고 꺼버렸다. 그 순간 덕산은 깨침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의 경전 공부가 지식 차원에만 머물렀는데, 선사의 입김 한 방에 알음알이가 사라지고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큰 절을 올리는 제자를 향해 스승은 무엇을 보았는지 묻는다. 그러자 제자가 답한다.


   “지금부터 견성성불의 가르침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금강경> 박사가 선승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그는 짊어지고 왔던 <금강경소>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은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는 번쇄한 지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선사로서 수많은 제자들을 마음의 세계로 인도하게 된다. 그는 불교의 핵심을 묻는 제자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독특한 방법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이른바 덕산방(德山棒)이 그것이다. 그는 84세에 이르러 다음의 열반송을 남긴 채 고요 속으로 떠났다.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쫓는 것은

그대들 마음을 괴롭힐 뿐이다 (捫空追響 勞汝心神).

꿈에서 깨어나면 그릇된 것임을 깨칠 것인데,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夢覺覺非 竟有何事).”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덕선선감이 마음의 눈을 뜨고 경전을 태우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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