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전(祖師殿) 불교 각 종파의 조사(祖師, 위대한 큰스님)나 그 사찰의 창건주(創建主) 스님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전각으로 격을 낮추어 조사당(祖師堂)이라고도 하며 나라의 최고 큰스님을 모셨으면 국사전(國師殿)이라 한다.
특히, 선종(禪宗)의 사찰에는 고승들이 입적하면 화장을 해서 사리탑인 부도를 만들고 조사당을 지어 그 안에 영정을 봉안시킨다. 그러다가 다른 종파에도 전파되어, 지금은 대부분의 큰 사찰에는 조사당이 거의 다 있다. 또는 인도와 중국의 조사인 33조사와 함께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스님, 태고 보우(普愚)스님 등을 모시고 때로는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대사(泗溟大師) 등의 영정도 모시기도 한다.
부석사의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호)은 무량수전에서 북쪽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부석사 창건주이신 의상(義湘)조사와 이 절에 주석하였던 역대 조사들의 영정을 모셨는데 지금은 최근에 조성한 석고 의상조사상과 일대기 탱화를 안치하고 있다. 조사당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다는 전설의 선비화(仙扉花, 학명 골람초)가 비나 이슬을 맞지 않고도 자라고 있는데 크지도 시들지도 않고 항시 그대로 살아있다 한다. 보호 철망책을 둘러 놓아 조사당의 아름다운 전경을 전부 담지 못한 것이 한편 아쉽기도 하다.
송광사의 국사전(國師殿, 국보 제 56호)이야말로 승보사찰 송광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고려시대에 왕으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열 다섯 분의 국사와 조선시대에 그 공덕이 그 옛날의 국사와 같다고 하여 종문에서 국사의 칭호를 붙인 고봉(高峰)화상을 합한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그들의 덕을 기리는 곳이다.
1951년 대화재에도 국사전만은 화재를 피하였는데 이는 국사들의 법력(法力)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건립 년대를 확실히 할 사료는 없지만 대체로 1450년 전후의 건물로 판정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정면 4칸, 측면 3칸(11m×4m)의 맞배지붕이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석조기단은 특이하게도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장방형의 석물을 가로로 눕히기도 하고 세로로 세우기도 하여 쌓았다. 안타깝게도 1995년에 16국사 탱화 중 13점은 도난당했다 한다. 국사전은 국보 제56호로 지정되어 매우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통도사의 조사전에 해당하는 영각(影閣)은 통도사의 역대 주지 및 큰 수님들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로 우리나라 여러 절의 조사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정을 보존하고 있다.
해장보각(海藏寶閣)은 643년(선덕여왕 12)에 당(唐)나라에서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頂骨) 등을 가져와 금강계단을 만들고 이 절을 지은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영정과 그 주변에는 고려 대장경 1234권을 봉안한 조사당이다. 해장보각이라는 전각 이름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었다는 뜻을 상징하기도 하고, 대장경의 내용이 바닷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산조당(開山祖堂)은 사당(祀堂)이나 서원(書院)의 문과 같은 솟을 삼문을 하고 있는 3 칸의 건물이 있는데 이는 해장보각으로 통하는 문인 셈이다. 곧 양산 통도사를 개창한 조사를 봉안한 전각으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다.
이 문 앞에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석조물이 있는데 바로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팔정도를 상징한 팔정도탑이다. '정견(바른인식), 정사(바른사유), 정어(바른말), 정업(바른행위), 정명(바른생활), 정진(바른노력), 정념(바른생각), 정정(바른명상)'을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