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비(塔碑)는 고승의 부도에 부속되어 석조로 조영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묘에 세우는 묘비, 임금이나 고관의 무덤 앞에 업적을 기록한 능묘비, 신도비, 또는 어떤 이의 덕을 숭상해서 세운 송덕비, 또는 효자비, 열녀비, 사적비 등과 그 모양새는 같으나 스님의 행적을 적었다하여 탑비라 부른다.
맨 밑에 귀부(龜趺, 거북)가 조각되고, 그 위의 비신(碑身)에는 부도의 주인공이신 고승의 생애와 행적 등을 기록하고 있으며, 상부 이수에는 용(龍)과 구름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거북은 길상(吉祥)의 상징이며 신과 인간의 매개자이다. 용은 불법과 국가를 수호하는 신의 상징이며 구름은 그러한 용과 일체라는 상징이다. 이러한 탑비는 부도의 주인공이신 한 고승의 삶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이해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산사에는 많은 부도와 함께 많은 탑비들이 비림(碑林)을 이루고 있다.
송광사를 안고 있는 조계산 기슭으로 들어가면 율원이 있다. 그 율원 가까이 탑비전에 있는 보조국사(지눌)의 탑비는 귀부와 비신, 이수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 귀부 위에 사각의 비좌를 안치하여 비신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에 이수를 놓았는데, 이것은 신라시대부터 유행한 일반형 석비 양식이다. 나보다 앞서 이 인간세에 오시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부처의 길을 먼저 찾아가신 보살님의 자취가 바로 부도와 탑비이다. 이들을 닮고자 부도탑비에 삼가 손모아 머리 숙인다.
전북 부안의 내소사는 일주문을 들어가 500여 미터에 이르는 긴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왼쪽 언덕에 부도탑 비전이 포근한 햇살을 받고 있다. 이 탑비전에는 당대의 명필 탄허스님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탑비가 있다. 전면에는 '혜운범부지비'라 쓰고 뒷면에는 '生死於是 是無生死(생사어시 시무생사)'라 음각하였다. '생사가 이곳에서 나왔으나, 이곳에는 생사가 없다'라는 뜻이다.
두고 두고 생각해보아도 '이곳에 생사가 없다'란 말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공(空)이라더니 이 말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본시 난 것도 없고 죽은 것도 없는데 세상사람들 난 것을 기뻐하고 죽은 것을 슬퍼함을 달래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