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에 딸린 작은 절, 또는 승려가 임시로 거처하며 도(道)를 닦는 집을 암자라 한다. 예로부터 큰 절에는 으레 작은 절이나 암자가 딸려 있어 승려들이 도를 닦는 수도장(修道場)으로 많이 쓰여 왔다. 이는 끊이지 않은 불사(佛事) 등으로 해서 수도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인적이 잦은 큰 절보다는 그렇지 않은 암자 쪽이 더 적않하였기 대문에 자연스럽게 암자를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벌써 많은 수도승들이 수도를 위하여 인적이 드문 깊은 산이나 외진 곳을 찾아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해 온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다도 먼저 암자를 마련하여 수도를 하다가 뒤에 그 곳에 큰 절을 짓게 된 경우도 많았다. 암자의 명칭이나 그 규모·모양 등은 달라도 많은 수도자들이 깊은 산 속이나 호젓한 강변 등에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精進)해 온 기록 등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불일암]
송광사의 효봉영각에서 북쪽 산길로 들었다. 율원인 비니전을 지나고 감로암에서 스님들과 차와 담소를 나누고, 다시 불일암(佛日庵)을 찾아 산길을 걷는다. 감로암의 'ㄱ', 불일암의 'ㅂ' 등 한글 초성 자음 만으로 산길 이정표 팻말은 산새 소리와 더불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이 곳을 찾아가는 까닭은 법정(法頂) 스님(1932~2010) 때문이다. 스님이 직접 집을 짓고 무소유의 삶을 사신 곳이 어떤 곳인지 나도 직접 느끼고 싶었다. 입구의 대숲길은 길이기 보다는 그 자체가 문이었다. 작은 굴같은 대숲을 지나니 그 안에 불일암이 있었다. 이 암자는 제 7세 자정국사(慈靜一印, 1293~1301)께서 창건하여 얼마 전까지 자정암(慈靜庵)이라 불렸다가, 1975년에 법정스님께서 중수하신 다음에 불일암이라고 고쳐 불렸다.
암자에는 젊은 스님이 한 분 계셨다. 넓은 텃밭에는 채소가 자라고 겨울을 지날 땔감도 충분하다. 젊은 선승의 여유는 산새를 벗하고 있다. 그 눈빛과 절제된 말씀은 예사롭지 않으며 다만 함께 마신 차로써 다선일미(茶禪一味)를 대신 설하셨다.
조계산 비로암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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